"아네모네 마담"
빗물속에 갇히다.
아니, 갇히우고 만다는게 그런 표현이 나을 듯 하다. 자초하는 의지로싸...
옛날에 옛날에 선비들께서는 그리운 임, 사랑하는 님이 떠나지 못하라고 이별을 뒤로 물리고,
물리라고 빗물을 핑계삼아 감추어진 속내를 은근슬쩍 빗대고 했었는데...
나는 나는... 그리움 다 이루어내지도 못하고서 허겁지겁 빗물에 의지한다. 소심한가...
갇힌다는 것,
다름 아니고 일부러 자초하지도 않았지만 물끄러미 미동도 못한 채,
저 쪽 빗물 바라다 보며 순간, 아, 자유다 !라며 외치고 싶다.
자유속에 무궁무진한 그'그리움'을 자유의 행위로 가두어 둔다. 몰입... 집중... '그사람'만이...
골몰한 집중된 그'그리움'의 자유를 가두어 둔다. 그'그리움'만의 온전한 자유가...
갇혔다. 그 상태로 순간 정지가 된다. 몰입의 경지... 멈추어 섰다.
주먹으로 입 틀어막고,
울부짖지도 못한채 빗물 땅바닥에 무심코 내려앉는 파열음에 다만 귀 기울인다.
빗물이 이른 아침부터 한사코 앞길을 막아선다. 주저 앉는다...
모르면 몰라도 밤새도록 빗물은 이미 앞길을 막아설 작정이었으리라.
일기예보에,
벌써 수십 일째로... 이제것 그 빗물은 기록적으로 길고 긴 날짜였다고 하고,
곧이어 기록도 훌쩍 뛰어넘을 기세인듯 하다고도 ...
아무렴, 남의 일...
"발등에 떨어진 불" 내게는...
'그사람' 닿지 못한채 장구한 시간이 내 손도 마다하고 뿌리치고 가고 있고...
도체 기약은 없고...
분노가... 내가 제일 죽을 지경이다.
빗물때문에,
다시 한 발자국 나서자 솜에 물젖듯이 바짓단을 타고 태연자약하게 찌꺽찌꺽 올라선다.
갈길이 바쁜데도 발목을 잡아챈다는...
그사이 흘끔 본, 앞건너 12층인가... 13층에서는 '그야말로 빗속을 뚫고서'이삿짐이,
둔탁하게 무표정한 길다란 사다리가 보였다. 무슨 사연이...
빗물에 저 이삿짐은, 그들의 세간은 온전할까... 무슨 사연이 있겠지.
이사가면 지금보다 더욱 더 '부자'가 되겠지.
나는... '그사람' 몇날 몇일 '그사람' 닿지도 못하고...
나보다 더욱 기구한 사연이 있을까마는...
나도 뭉클어지는 숨겨둔 사연 안고서 순간 순간 버텨내고 있으니...
'그사람' 마주 대할 수 있겠지... 당당하게 손끝에 닿겠지...
앞꿈치부터 살금살금 어딘가에 무턱대고 들른다.
'감정의 사치'... 또는 빗물과 Coffee ...
낯익은 그 자리에,
한 쪽 구석진 그 자리에 용하게도 앉는다.
무슨 예약석... 익숙하게 나를 위해서 비워두면 안될까. "아네모네 마담"이 지금은 없어서 일까...
엉뚱한 욕심이 인다. 항상 그 자리에 앉고 싶어서...
앞면 유리창에 내모습이 다소 가리워진다. 안심이다...
"아네모네 마담"은 어디 갔을까...
매일 매일 정해진 시간에 "다방"에 들렀다는... 그리고 아네모네 마담을 말없이 쳐다보던 한 남자와,
그들만의 사랑을 이루었을까...
내게 있어서 유독 그'그리움'은,
인류 역사상, "이런 일을 잘하는 것은 드물고 칭찬받을만 하며 고귀한 일"이 되는 것인데...
그'그리움'도... 그'사랑'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선택일 수는 있어도,
'그사람'은 필수적이라는 엄격하고도 절대적인 사실 밖에는 달리 말할 길이 없다는...
필연적인... 필수적인......
'그사람' 닿지도 못하고 엉엉 울고마는데 대신 빗물에 갇히운다.
그'그리움'의 무궁무진한 자유를 누린다. 공교롭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