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멸'
명멸하는... 점점이...
저 멀리 등대불이 번쩍번쩌거리는...
머리 위에서 샛별이 듬성듬성 반짝이는 그런 규칙적이거나 불규칙적인 미세함이 돋보이는...
나타났다가 금새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이내 나타나는...
눈꺼풀의 거의 규칙적으로 깜박깜박이는...
한편, 바람의 무차별한 위용에 겁을 먹었는지 나뭇잎은 꼬깃꼬깃 부쩍 쪼그라들고 있다.
나의 계절감은 아직인데...
숨까지 다하고 기어이 발 아래 내려앉지도 못한 채...
저리 저대로 기지개 못켜고 움츠러든 채 낯선 바람에 어거지로 밀려 내려앉고 말면...
은근슬쩍 하나의 '명멸'을 엿본다.
"세월. 이. 가면"...
고꾸라질 듯한 숨소리가 내게서도 들리고 마는 것을 어쩌자고...
그'그리움'의 앞가림도 마다한 채 눈 앞의 명멸에 어처구니 없는 'sympathy' 또는 지극한 '동정'을 안고 버티는지...
남의 탓...
나 또한 저 바람에 허둥지둥 쫓겨서인지 움츠러든 어깨 작아진 모습으로 손바닥을 부벼댄다.
그렇다면,
그'그리움'도 "신록"의 나뭇잎 펼쳐지고 그 나뭇잎 발 아래에 내려 앉듯이,
마침내 '현존의 부재'로 인해 명멸하는지...
그'그리움'의 장엄했던 태동,
그'사랑'의 피고 지고... 피어나는 명멸에 해당하는 것인지...
그리 거창한 말투로 명멸을 고뇌하지 않더라도,
- 나는 언제까지 얼만큼 생명을 부지 할 수가 있는지...
- 살아 생전에 '그사람'을 과연 몇 번 더 손 내밀어 마주 닿을 수가 있는지...
그렇게 어쩜, 그것들이 '발등에 떨어진 불'은 아닐까...
컵 속에 내려앉은 고요함처럼 자리 잡고 뜨거운 음미를 고대하는 coffee는 아직 온기가 다 스러지기 전에,
입술과 혀의 가느다란 미각을 재촉해야만 그 특유의 속성 또는 가치 - 젠 체하는 romantic한 -를,
몸소 재현할 수가 있는 것처럼,
살아 생전 그'그리움'이 찬란히 꽃피어 날 수 있도록 '그사람'을,
'그사람'을 한 번만 이라도 더 더... 손끝에 마주 닿을 수만 있다면... 하는,
고요하게 가두어진 찻잔 속의 젠 체하는... romantic한 옴짝달싹 으스러지는 희한한 소용돌이가 나를 일으켜 세운다.
그'그리움'의 '명멸'이 새로움을 잉태하는 순간의 열락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