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사람'으로 말미암은 태생적인 의미의 '사랑의 환희'말고도,
나는 어느 순간인가 부터 '인간적인 고뇌'의 별도의 창고라는 순전히 나만의 기억의 한 켠을 따로 깊숙이
마련해 두지 않으면 안되었다.
가장 '인간적인' , 사람에게 보편적인, 가장 일상적인 생각들이 채 언어라는 개념의 수단을 통해서도 피어나지 않고,
그러지도 못한 채 서둘러서 그 쪽으로 옮겨지고...
어쩌면 기억 저 편에 숱하게 묻어두어야만 하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의 보물창고 같은 곳으로 일부러 피난을 가야만 한다.
사랑의 밀어...
그리움의 조각조각 깨알 같은 편린들, 열매 맺지 못한 기쁨에 겨운 벅찬 언어 속의 찬사들...
고통스럽다...
'우울'이란 말을 상기해내어야만 하고,
그 고통이란, 애기씨를 세상에 내어놓은 어머니의 산고라고 대신하면 여전히 감정의 사치일까...
그 '그리움'은,
'그림처럼 곱고 예쁜 그사람'은, 마치 도화지 위에 4B 연필 들고서 무슨 예술가인양 자처하고 젠 체하면서...
연필 비스듬히 들고 한 쪽 눈 지긋이 감고서 정물의 구도와 입체감을 - 그 모습을 찬란하게 재현해 보기라도 하려는 듯이...
그런 환희만이 흔재하고 상존한다.
그 환희는 약삭빠른 열두 색 감정의 변화에 놀아나지 않는,
본래 고대로 있어 온 세상 중심의 원리이고, 원칙이다.
그 '그리움'이란 혼자 놀기가 그렇다...
손에 사진 한 장 달랑 들고서 길거리의 사람들 - 그 뭇사람들 옷소매 부여잡고서,
"누가 이사람을 모르시나요" 하는 이리저리 정처없이 이산가족 찾는 애닯은 사연과 쌓아 둔 설움,
그리고 땅을 치고 목놓아 우고 마는 폭폭한 그리움 뿐이다.
그 '그리움'이란,
숨을 쉬어야만 하고, 숨이 다음 호흡으로 넘어가는 순간 순간,
계절이 바뀌어 가고 한 해가 넘어가면 마디 마디마다 나무 밑동에 가로로 나이테 생겨나듯이,
가슴에는 굵직한 획이 사정없이 죽죽 그어지고 만다.
그 '그리움'이란,
뚝뚝 떨어지는 ... 보태고 보태어 지고... 굵직 굵직해지는 나이테는,
아무리 두 손 두 팔 벌려보아도 맞물려지지 않는 천 년 묵은 역사책 속의 아름드리 나무가 된다.
'그사람' 이후, 내 삶의 이력은 줄곧 '덤'이라는 생각이다.
모년 모월 27일, 월요일이었었고, 그 날은 세상에서 전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남의 일처럼 생각 해왔던 것이 비로소 기적처럼 생겨났기 떄문이다.
'그사람' 모습 채 마주하기도 전에, 무슨 섬광 같은 빛이 눈을 멀게 하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버렸다.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그 꿈의 이야기는 그 날이후 그렇게 잉태되었다.
인간적인 고뇌처럼 처연하게......
기적에 가까운 사랑의 환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인간적인 고뇌가 엉겁결에 나를 찾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