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광고 문구가 그런다.
"마음을 다해 사랑했다면 결국 그사람 앞에 서게 됩니다."
"마음을 다해서..."
여전히, 언제나 내 마음은 아직 멀었다는 자책어린 위로가 나를 지탱하여 준다.
내가 그렇게 ('그사람'에게) 말했다. 다소 무례한 어투로써,
"그런 말 하지마!... "다시는 하지마!"
가슴 덜컥 구멍나던 그 즈음부터 "천둥처럼, 벼락처럼",
그 순간 부터 세상의 우주에 심정적으로,
한 여자! 한 남자!일 뿐이고,
세상에서 죽었다 꺠어나도 내게는 유독,
'그사람' 뿐이다.
내가 무엇이 괴로운지... 무엇 때문에 Hamlet의 마지막 절규를 되뇌이며,
억장 무너지는 자기연민의 슬픔을 침묵 속에 꼭꼭 숨긴 채,
가쁜 숨을 부끄럽게 연명하고 있는지...
'그사람'이 일만 분의 일이라도 알아채기라도 한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
뭐하고 살았는지......
살아 숨쉬고 말을 하는 것은 그래서 더더욱 죄인이다!
온갖 능욕적인 꼬락서니를 몸소 마다 않고 견뎌낸 것은 또 무얼까...
숨죽인 채 어찌 이리도 버텨내고 있는가...
외마디 단말마의 비명처럼 Hamlet의 절규를 마지막처럼 외칠 수는 있어도,
그 '꿈'이 가로 막고 나선다. 우뚝 솟은 굴뚝처럼 위로가 된다.
천하에 다시 없는 위로가 된다.
참 어처구니 없이 살아내지 못했으면 '그사람' 마주 대할 수 있기나 했을까 !
대책없이 살아 온 허름한 모습 때문에,
아주 다행히도 '그사람'을 마주 대할 수 있음은 천먼다행이랄까...
어처구니없게도 그런 위안이, 위로의 낮은 생각이 겨우 나를 다독거린다.
허름함, 지독한 허름함이,
구멍 난 가슴 끌어 안고 '그림처럼 참 곱고 매우 예쁜 그사람'을 곧이 곧대로 마주 대할 수 있었음은,
사람이 가진 우주 속의 기묘하고도 필연적인 심지어 태생적인 그 '(인)연'도 훨씬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사실이다.
필연코, 결단코,
'그사람'은 "신"만이 갖고 계신 그 필연의 인연도 훌쩍 뛰어넘는 감히 그런 '값진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