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제 아무리 곱씹어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음은 매 한가지이다.
숨쉴 틈도 없이 인류에게 내려진 재난처럼,
거대한 먹구름이 순식간에 땅 위의 사람들 머리 위로 덮치고,
이내 장대 만한 빗방울이 쏟아져 내리듯이,
도체 알 수가 없는 마력에 자석처럼 이끌리듯,
아무 것에도 의지할 수 없는 채 빠져들고만 있다. '그사람'에게로만...
"보라,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그의 모습..."
이 순신장군께서 우리 앞에 그처럼 나타나셨다.
격정적으로 가슴 구멍나던 그 순간,
'그사람'은 그런 '빛'으로, 그런 '위용'으로 현신하고 '현존'이 보였다.
나뭇가지 세차게 흔들리면 유리 창문은 덜컹 덜컹 소리까지 낸다.
가슴은, 내 하도 많은 그리움에 절절매는 먹먹한 가슴은,
덜그럭 덜그럭 소리를 내게 한다.
어안이 벙벙한 채, 급기야 혼절하는 무아지경이 된다.
길을 가다가도 순간 그냥 멈추어 서고,
두리번 두리번 이리 저리 '그사람의 현존'을 찾아 헤매인다.
망연 자실... 길 잃은 어린 아이처럼 손가락 입에 물끄러미 댄 채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자동차의 바퀴처럼, 철길 위의 기차처럼,
다람쥐 쳇바퀴처럼...
단락 구분지어지듯이 끊어지지도 않고 그런 정신 나간 극한의 그리움은 꾸준히,
마치 두 주먹 불끈 쥔 꿋꿋함이 이어진다. 아어진다...
가슴이 그처럼 너덜 너덜 거덜났으면,
그 '꿈'이 손끝에 닿지 않아도 닿을 수 있었던,
그 '꿈'의 희미한 기억 속의 끄트머리라도 잡아 볼 수만 있다면 그 얼마나 좋으련만...
'그사람'은 안개이다.
안개 속에 두 사람이 나란히 함께 서 있지도 못하고...
'그사람'만 안개 속에... 구분할 수 없는 희뿌연 모습으로...
나는 손만 더듬 더듬... 그리움만 먹먹해진다.
도무지 '그림처럼 곱고 예쁜 모습'은 '그사람의 현존'이외에는 달리 도리가 없다.
기억이... 기억 속에 차분히, 아직 남아 있지 않다.
절망이 나를 알아서 먼저 가르친다.
채, 아직 눈도 뜨지 못하고 가물거리는 어린 애기가 엄마 젖무덤을 찾아 헤매이듯이,
나는 그 '꿈'과 그 '빛'을 찾는다. 여전히 안개더미 속에서...
나는 '신'을 만나고,
'신'을 꿈꾸고, '신의 계시'를 받고,
'신의 현존'을 닿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