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봅의 자락

라금덕 2012. 5. 29. 16:15

여전히 굴뚝은 높아만 가고... 나는 아직도 그 '사랑'까지에는,

멀었단다.

'그사람' 이후,

창문 너머 바람 소리 보여도, 목덜미 뜻 없이 스치우는 바람결 원망스러워도,

'그사람' 이후,

맞이했던 그 봄의 자락을 생각해 낸다. 언제라도...

그 봄의 자락을 잊을 수가 없단다...

아찔함이었다.  기우뚱 기우뚱... 아찔함이었다.

높다란 절벽 위에서 까마득한 낭떠러지를 내려다 본 순간,

다리가 후들거리고 등줄기가 송연한 그런 아찔함이 내게,

스스럼 없이 손 내밀어 꼬옥 잡아 준 그런 감동이었다.

가슴은 뭉클함이었고, 그 '현존'은 '그림'이었다.

아찔함은 주저 앉고픈 어리 둥절한 현기증이 된다.

'그사람'이 내게 종교가 된 것은 그런 연유이다.

누군가가,

  " 이제 감히 말하거니와,  인간이 신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인간들은 자기들의 세계보다 높은 차원에 실제로 존재할 수도 있는 어떤 것의 무한한 복잡성을 감지하고,

     아찔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신이라는 개념은 바로 그런 현기증에 맞서 안도감을 얻기 위한,

     한낱 외관이 아닐까?" 고...

'그림처럼 곱고 예쁜 사람'의 '현신'과 '존재감'은 아지랑이 기지개 켜던 '봄의 자락'처럼,

아찔함이 되고 현기증이 나를 주저 앉히려고만 하고,

하도 많은 그 '그리움'으로 급기야 위안을 얻는 평화스러움이 구멍 난 가슴에,

물밀듯이 찾아 들었다는 굳은 맹세가 된다.

그래요, '그사람'은 '그림'입니다!

어느 갤러리(gallery)에, 화랑의 전시회장에 우뚝 걸려 있는 '그림'...

사람들은, 수 백의, 수 천의 사람들이 그 '그림'을 엉겁결에 지나치기도 하고,

한 동안 그 '그림'앞에 발 길 멈추고 망연히 서서,

웅성거리면서 그 '그림'을 마주 대하고만 만다.  '그사람'은 그런 지경이다.

스쳐 지나가지만,

순간, 그림에 맞서는 가슴 속의 일렁거리는 접점이 있다.

몇 날 몇 일... 수 백 수 천의 사람들의 감동의 일렁거림의 물결,

그 접점의 무수한 결정체가 순순히 '그사람'이다.

현악 4중주의 첼로의 베이스(bass)자락이 깃든 재즈(jazz)의 음률처럼 속속들이 저미어 든다.

그것만이, 내 하도 많은 그 '그리움'의 무한한 설명이다.

세상의 그 어느 말로써도... 어느 글자로써도 도대체 설명이 안 되고 옮겨 놓기 조차 덜컥 겁이나는,

신라시대의 "향가"처럼 해독이 어려운 '그림처럼 곱고 예쁜 사람'... 어쩌라고...

아물 아물... 가물 가물... 아지랑이 닮은 현기증 일던 아찔한 봄의 자락의 향연은,

물결치는 그 감동은 그 날 이후, 맥맥히 이어지고만 있다.

아, 사랑아!